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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칼럼 에세이 : 홈, 마이 스윗 홈. (Home, My Sweet Home.)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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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마포청년나루 조회수 743회 작성일 202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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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 https://blog.naver.com/live_ing_anyway/222453015916 



1. “땀을 많이 흘리면 밥맛이 없습니다.”


  얼마 전 이사를 왔다. 사실상, 두 군데로 분리되어 있던 거주 공간을 한군데로 합친 작업이니 보편적인 이사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지만. 삼 월경부터 쭉 작업실로 써온 마포구의 공간이 원래 가정집으로 설계되어 나온 연립주택에 속해있던 터라, 그간 일터와 자취방의 경계를 아우르며 써온 격이었다. 그 이전까지 내가 자취방이라고 부르던 공간은 관악구에 있는 고시원 건물 속 반지하 방이었다.


  그곳에 살기 전까지는, 나름의 주방 시설과 세탁기가 내부에 딸린 사 평 남짓 원룸이 나의 집이었다. 그 원룸에서 아마 일 년을 지냈던가. 아니, 이 년이었던가. 사실 몇 년을 머물렀건,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기에 지나간 시간 따위를 셈할 여력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거주지의 문제였다기보단, 당시 경제적 소득 활동을 이행하면서 얻은 심신 건강의 피폐함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물류센터 혹은 공장에서 쉬지 않고 아홉 시간, 길면 열 시간을 내리 일하다가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까지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터덜거리며 간신히 걷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이 세상에서 사라져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다른 세계의 저편으로 숨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다녔던 일터 중 유일하게 사내 급식을 지급해 준 곳은 한 인쇄공장이었는데, 점심시간이 고작 삼십 분밖에 되지 않았더랬다. 새벽 여섯 시 경, 그날의 첫 시동을 켜는 버스에 몸을 실은 후 중간에 환승을 하여 갈아탄 뒤 도보로 이십 분을 걸어 도착하는 공장 건물의 삼 층으로 계단을 딛고 올라가면 구석에 있는 일 평 미만 휴게 공간에 짐을 내려놓고 물병을 챙겨 나와 레일 앞에 서야 한다. 그때의 시간은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정식 업무 시간은 아홉 시부터라고 계약상 명시되어 있지만, 실상 시곗바늘이 여덟 시 오십 분을 가르치면 그때부터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 시절을 기점으로 나는 입맛이라는 걸 슬슬 잃어갔다. 그 원인이, 바로 이전에 다니던 회사 생활로 얻은 신경성 위장염의 후유성인지, 식비가 없어 굶는 걸 반복하자니 위장이 이제는 빈속을 디폴트 상태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지, 그도 아니면 그냥 고된 노동 탓에 기력이 쇠하여 입맛이 달아난 건지 명백히 알기는 어려웠다. 



2. “부르주아의 목을 따라.”


  당시 앓던 신경성 위장염이 꽤 심각한 수준이어서, 어떤 음식이건 속에 집어넣었다 하면 도로 토해내는 수준이었다.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난데없이 토하기는 일상이었고, 잠을 자다가도 속이 안 좋아 눈을 떠보면 곧장 위액과 함께 그날 먹은 무언가를 맨눈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였다. 굳이 무언가를 먹지 않은 빈속임에도 토하기를 멈추지 않아서, “제발 토 좀 그만하게 해줘”라며 방 한구석에서 혼자 엉엉 울어 재낀 적도 있다. 그 시절 부로 오늘날까지, 나는 늘 상비약 개념으로 위장약을 챙겨 다니는 습관이 굳혀졌다. 더불어 가방에는 늘 검은 봉지 몇 가지를 넣어 다닌다. 언제 또 어디서 갑자기 난데없이 이 예민한 위장이 스트레스를 내지를지 당최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튼, 당시 아픈 몸을 이끈 채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는답시고 했던 일용직 노동 작업도 심신 안정에 별달리 도움을 보태주진 못한 실정이었다. 그 시기, 출퇴근하던 나의 모습을 이미지로 비유하자면 아래와 같다. 



3. “‘쿠X’에서 하루만 일하고 와라.”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병을 얻어 회사를 그만둔 와중에도, 일을 아예 쉰다는 선택지란 내게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인 가구의 가장으로서 내겐 먹여 살려야 할 스스로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일을 안 하면 돈을 벌 사람이 없으므로, 나는 영락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함에도, 물류 센터라던지 공장에서의 육체노동은 도무지 ‘사람’이 할 만한 일이 못 된다는 생각을 쉬이 떨칠 수가 없다. 해당 직업군과 그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기술 및 노동을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겪는 노동 현장의 근로 실태를 정확히 돌아보고 제고 할 필요를 주장하는 것이다. 영혼을 생생히 갉아 먹히는 기분만을 체감할 수 있을 뿐인 극도로 열악한 노동 환경 속, 과연 그 어떤 청년이 자신의 미래를 추진하고 이를 지속 가능하게 건설할 수 있을까.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유명 대기업이 운영하던 물류센터에서 일어난 산재 사고가 그만큼 가시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경험을 몸소 겪고 체감한 청년 세대가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물류센터며 공장의 일용직 근로자 인력을 채우는 것은 대부분 2030의 젊은 청년층이다. 평균 수준의 건강한 육체만 전제된다면 소위 ‘빡세게’ 일하고 그만큼의 일당을 받아 갈 수 있다는, ‘생각보다 할 만하다’라는 인식이 널리 알려진 탓일 테다. 그야, ‘단 하루’만 일하고 영영 발 들일 일 없다면야 그렇게 가볍게 말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 속 실제 삶은 그리 녹록하지 못하다. 아무튼 저런 가벼운 인식 탓인지, 지금은 전혀 다른 업계에 종사하며 프리랜서로 소득 활동을 이어가는 내가 급전 문제로 종종 골머리를 앓을 때면 “‘쿠X’에서 하루만 일하고 와라” 같은 나름의 조언을 건네는 주변인도 있기 마련이다. 정작 그 지인은 그러한 육체 노동직의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반면, 몸소 경험했던 당사자인 내가 말을 얹어 보자면, 적어도 나와 동등한 인격을 지닌 사람을 상대로는 도무지 그러한 일을 권하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4. “집을 갖는다는 건 삶에 안정성을 갖는 거야.”


  올해 초, 더는 여타 구직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채 프리랜서의 길에 뛰어든 것은 겁이라고는 갖다 버린 충동적인 행동임이 틀림없었다. 그때 내가 가진 작업용 장비라고는, 이전에 학과 선배에게 물려받아 쓰고 있던, 총합 십여 년의 역사를 지닌 노트북 하나가 전부였으며 정기 수입이 없어 실상 무직이었던 나는 그야말로 없는 돈을 간신히 끌어모은 뒤 작업실을 계약할 수 있었다. 반쯤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는데, 그 선택으로 인해 현재의 내 삶은 훨씬 더 넓고 선명한 경우의 수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려와는 달리 ‘망하지 않고’ 여전히 하루하루의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당시, 나의 용기를 북돋워 주고 실제적 도움을 준 주변의 사랑하는 지인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나는 현재의 내 직업에 누구보다 크게 만족하고 있으니까.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가질 수 있는 업무상 장점도 내 성격과 잘 맞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이전에 거쳐온 여타 직업 활동과는 다르게 내가 가진 적성과 기질, 재능을 일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풍만한 직업적 만족감을 준다. 근래의 나날은, 지금의 직업 활동을 어떻게 더 발전시키고 확장 시킬지에 대한 고민과 계획,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이를 실현하는 과정으로써, 고시원 자취방을 완전히 정리하고 나와서 이곳을 내 새로운 거주 공간으로 삼게 되었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 그 과정이 평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쫓기듯 일에 매진하느라 이런저런 골병에 내내 시달렸고, 종국엔 지금 또 이렇게 심신의 병세를 얻었으니까. 매일 이유 없는 과도한 피로와 과수면, 무기력 등에 시달리고 있다. 외에도 이어지는 여타 추가 증상을 빌미로 내과에 자문했고, 참여 중이던 몇 개의 프로젝트에서 결국 자진 탈퇴하게 되었다. 서둘러 성공하고 싶다는 포부와 욕심이 과한 의욕을 부르고 그것이 자신을 계속해 몰아붙인 주범이 된 듯하다. 얼마 전에는, 범불안장애 추정 진단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한 지인이 내게 물었더랬다. 너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억눌려 있는 것 같다고. 뭐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냐고. 나는 곧바로 말할 수 있었다. 집을 갖고 싶다고. 온전한 나만의 집. 안온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지킬 수 있는, 나만의 유일한 공간을 갖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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