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지구를 표류하는 모든 외로운 외계 생명체들을 위해_이와 성현진 > 청년 웹진(기자단)

본문 바로가기

청년 웹진(기자단)

[10월] 지구를 표류하는 모든 외로운 외계 생명체들을 위해_이와 성현진

페이지 정보

작성자마포청년나루 조회수 139회 작성일 2023-10-24

본문

afcffb168e8f398c302c55ab8ea275c1_1698129575_216.jpg
 

-영화 김씨 표류기 (Castaway On The Moon, 2009)-


“말씀 들으니까 확실히 용기가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여기서 남자 김씨에게 용기란 한강으로 뛰어들, 즉 자살할 용기였다. 회사 파산 후 미납이자 포함 2억 1038만 원이라는 억소리 나는 빚을 지며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거기다 여자친구는 헤어짐을 고했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사회에서 발 디딜 곳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한강으로 몸을 던진다.

 하지만 세상은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를 붙잡는지 김씨를 저승이 아니라 한강의 밤섬에 데려다 놓는다. 밤섬에 불시착한 그는 그곳에서 탈출하고자 온갖 노력을 하지만 119는 물론 전여친 수정에게 건 전화도 거절당했고 결국 무인도의 나무에 목을 매달려던 그는 민방위 훈련이 끝나고 죽을까 잠시 고민한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한다. 고립된 섬을 빠져나가 자신에게 죽을 용기를 주었던 세상에 다시 제 발로 들어가는 게 더 지옥이라고.


afcffb168e8f398c302c55ab8ea275c1_1698129640_0041.jpeg
▲ 짜파게티 쓰레기 봉투를 발견한 남자 김씨 ©김씨 표류기 영화 스틸컷 

그렇게 남자 김씨는 세상과 단절되어 막힌 섬에서 생존해 나간다. 또한, 아이러니하게 그곳에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게 점차 무인도와 하나 되어 생존하던 중 그는 버려진 짜파게티 봉지를 발견한다. 그 봉투에 남은 분말 스프를 보고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꼭 짜장면을 만들어 먹겠다는 꿈을 꾸며 드디어 삶이란 것에 희망을 가진다.

afcffb168e8f398c302c55ab8ea275c1_1698129640_0791.jpeg
▲ 방안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여자 김씨 ©김씨 표류기 영화 스틸컷 

“달을 찍는 이유는 달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으면 외롭지 않으니까요.”
여자 김씨는 외모 콤플렉스로 상처를 안고 3년째 방안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혼자만의 세상에서 망원 카메라로 달 사진을 찍고 다른 사람인 척 싸이월드를 한다. 그리고 민방위 훈련으로 아무도 없는 세상을 몰래 힐끔거리던 그날, 여자 김씨의 렌즈에 고립된 또 다른 남자 김씨가 불쑥 들어온다.
“이 외로운 외계 생명체와 일촌을 맺을 수 있을까요?”
일 년에 두 번 하는 민방위 훈련은 여자 김씨가 카메라로 아무도 없는 거리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 날이다. 그렇게 시작된 민방위 훈련에 텅 빈 세상을 렌즈로 보던 그녀는 밤섬에 불시착한 남자 김씨가 목을 매다는 걸 발견한다. 남자를 걱정했던 그녀는 그날부터 그를 관찰한다. 그가 죽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버려진 오리배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짜장면 하나로 꿈을 꾸며 다시 살아가는 그를. 그렇게 고립된 섬에서 짜장면을 만들어 먹으려는 남자 김씨를 어느새 진심으로 응원하며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나오게 된다.
 
afcffb168e8f398c302c55ab8ea275c1_1698129640_1467.jpeg
“헬프가 헬로우가 되었습니다.”
 정부가 실시한 전국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19~39세 고립, 은둔청년은 51만 6000여 명에 달한다. 이는 청년 1,000명 중 5명꼴이며 이들 중 약 18%는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잃어버린 희망과 불시착, 스스로를 가두는 고립,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 이 모든 것은 이상하게 생긴 소수의 외계인이 겪는 것이 아니다. 김씨 표류기에서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들,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과 같은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다.
우리는 남몰래 아파하며 스스로를 가두기도 하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기분으로 말을 잃기도 했다. 그리고 때론 오히려 아무도 없음에 진짜 행복감을 느끼며 울기도 한다. 움츠러들게 하는 상황에 움츠러든 것은, 아픈 상황에 아파한 것은, 쪼아 대는 세상에 쫓겨 나만의 공간에 숨어든 것은 잘못된 것도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afcffb168e8f398c302c55ab8ea275c1_1698129640_2097.jpeg
하지만 우리는 외롭고 아픈 와중에 외친 헬프가 반드시 헬로우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된다. 내 땅에만 여전히 시리게 내리던 봄비도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초록색 싹을 틔워내 주는 것처럼, 외롭게 손 흔들며 외쳤던 헬프를 누군가 알아채고 잡아준다면 어느 순간 따뜻한 헬로우를 전하는 손으로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손을 흔들어야 하고 그 손을 서로가 꼭 잡아야 한다. 용기 내어 전한 헬프라는 쪽지에 서툰 글씨로 답장을 주고받고, 누군가 헬로하고 수줍게 손을 흔든다면 반갑게 웃어주자. 지구를 표류하는 외로운 외계 생명체인 당신이 다른 외계 생명체와 맺을 씨앗 같은 일촌이 계속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afcffb168e8f398c302c55ab8ea275c1_1698129924_5518.jpg
 

마포청년 나루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13, 3~4층 (우)04027 02.6261.1939 02.6261.1941 mpnaroo@naver.com
© Mapo Naro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