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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성인식(成人式)_호소인 김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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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마포청년나루 조회수 186회 작성일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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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점차 그 모습을 거두고 슬그머니 추위가 다가오려 하는 11월의 스산한 분위기 사이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문 앞에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을 응원하고자 수많은 인파가 모였지만, 그들 모두가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바랄 수 없는, 오직 스스로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일 테니 말이다. “젊은이여 그 길은 너의 것이다.” 우레와 같은 목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문 안으로 뛰어든다. 성인식(成人式)이었다.


 이 일련의 의식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인식,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시험이 끝나고 모든 정시 선발 전형까지의 과정이 마무리되면, 수험생들은 크게 네 가지 부류로 나뉜다. 자신이 원하던 학교의 원하던 학과에 진학한 사람, 자신이 원하던 학교는 아니지만 원하던 학과에 진학한 사람, 자신이 원하던 학교에 진학했으나 원하던 학과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 자신이 원하던 학교에도 학과에도 진학하지 못한 사람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첫 번째 부류에게 박수를,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류에게 격려를, 네 번째 부류에게는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청소년은 비로소 성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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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필자는 네 번째 부류에 속했던 사람이었다. 기자라는 꿈을 가진 지도 어언 13년, 기자가 된 미래를 꿈꾸던 열 살 소년의 머릿속에 신문방송학과,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진학하지 않은 본인의 모습은 없었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스무 살 청년 새내기가 서 있는 자리는 미디어나 언론이 아닌 경영학과가 되었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 꿈이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수능 점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다, 기껏 빠져나온 입시의 지옥에 다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뿐이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는 사람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선고받고 인지하기까지의 과정을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순응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필자가 스스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그랬다.


 처음 며칠은 부정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할 자신은 없었지만, 최악을 맞이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난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 아니 12년간의 학교생활이 단 9시간 만에 결정된다니,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이내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에게 분노했다. 이렇게 오랜 기간 기자라는 꿈을 가졌음에도 너무 쉽게 포기한 것 같았던 스스로에게, 복수전공을 원했던 미디어학부가 없는 대학에, 원하지 않던 전공을 공부해야 하는 주어진 환경에 분노했다.


 이후 몇 달은 자신과의 타협의 시간이었다. 자기 파괴적인 자책이 무의미함을 의식하고, 주어진 상황에서도 꿈을 이어나갈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들었다. 경영학과만의 장점을 살려서 기자 활동을 하고자 스스로 기획하기도 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여러 기사를 작성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무의미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우울의 단계로 깊이 빠지기 전에 스스로를 다잡는 데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우울이 오기 전에 마음을 다잡았다는 표현보다는 걱정을 휘발시켰다는 표현이 옳겠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며, 독창적인 방식으로 꿈에 다가가며, 위기로 인식했던 상황을 기회로 만드는 과정에 심취하며 스스로와의 타협에 성공한 것이다. 


 결국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 낸 타협은 상황에 대한 순응이 아닌 사고방식의 변화였다. 대학, 아르바이트, 군대 등 학생 시절에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사회에 소속되며 사고의 지평선이 넓어진 결과이리라. 어렵지 않은 결론이었다. 전공이 반드시 진로와 일치할 필요는 없다는 말,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가 그 말을 받아들이기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했고, 여러 일을 경험해야 했고, 약간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우리가 수능이, 대학이, 전공이 중요하다고, 그들이 너의 앞날을 결정하리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이 성인이 되고 첫 번째로 마주한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물론 첫 단추는 중요하다. 셔츠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면 남은 단추도 줄줄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이미 완성된 셔츠를 입는다기보다는 한 벌의 셔츠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첫 단추가 의도보다 조금 밑에, 혹은 조금 위에 달렸다고 하여 하루바삐 작업을 멈추고 새로운 천을 꺼내 재단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방법은 다양하다. 단추를 떼었다가 다시 달 수도 있겠고, 지금 달린 자리를 토대로 새로운 단추 폭을 설정할 수도 있겠고, 혹은 이를 새로운 디자인으로써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모든 방식은 기존에 없던, 나 자신만의 셔츠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지, 결코 셔츠를 만드는 방식이 아님으로 지적받을 수는 없다.


 이러한 사고의 지속은 전공과 진로가 불일치할 때 오히려 이점이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의심마저 떠오르게 한다. 다양성의 시대 아닌가. 블루오션이 줄어드는 만큼 레드오션의 과포화는 현재진행 중이다. 과포화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젊은 세대들이 기존 세대가 만들어 둔 커리큘럼, 사고방식, 연구 과정을 그대로 따라서 걸어 나가는 것이 과연 유의미한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다.


 물론 전공과 진로의 일치가 가질 수 있는 이점은 명확하다. 보다 체계적인 교육 과정 하에 전공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관련 프로그램을 접하기도 유리할 것이다. 바람직한 방향성으로 볼 수는 없으나 현직자와의 학연 관계도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요소는 정보의 바다에 빠지다 못해 정보의 해일에 휩쓸린 21세기에는 그 의미가 퇴색한다. 원하는 공부, 필요한 강연이나 프로그램, 현업종사자와의 연계 활동 모두 전공자보다 접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뿐이지 결코 불가능한 과정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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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이 단순히 전공만 배우는 곳이라는 생각 역시 오산이다. 대학생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이들에겐 다양한 경험이 허락된다. 쉽게 만나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밟지 못할 땅을 밟고, 그 시기에만 마주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마주하는 모든 과정과 결과를 사회는 낭만과 젊음이라는 단어로 감싸준다. 진로와 꿈은 이 모든 경험이 모여서 형성되며, 결국 전공은 이들 중 하나의 요소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한 사람의 꿈을 이루는 데에 있어 전공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으로 결론 내릴 수 있겠다. 진정으로 이루고자 하는 의지와 그 의지를 뒷받침하는 노력만 있다면 어떤 전공, 더 나아가 어떤 경험이 걸림돌이 될 것이며 방해물이 될 것인가. 성인식(成人式)은 끝났다. 그 과정과 결과에 묶일 때가 아닌, 진정한 성인(成人)의 삶을 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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